책사풍후 아카이브 역사 지식 채널 논쟁
책사풍후
2023-08-04 16:07:59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하는게 아니고 조선시대 청장관전서 기록에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 기록을 선비가 그대로 긁어 붙인 기록이 있다는데. 그걸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한다고하네. 내가 옛날에 쓴 글이라서 다시 상세히 봐야겠는데. 별걸 트집을 잡네.
책사풍후
2023-08-04 16:09:43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임나일본부'라는건 어떤 통치 기구나 기관이 아니고 야마토 왕의 대리인이나 왜국 연맹에서 제2인자인 키비 쪽이 보낸 외교관의 호칭 혹은 명칭이라는건 한국 학계,일본 학계 둘 다 거의 정설이 되어있는 상황인데. 내가 그걸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임나일본부를 식민지라고 주장한 적도 없는데. 왜 내가 쓴 글의 결론을 니가 멋대로 단정짓는지 괴상하네.
Randomuser
2023-08-04 16:13:20
신고
답글
그야 해당 게시글에 첨부하신 지도에서 왜국과 임나가 같은 빨간색으로 표시되고, 우산도까지 뜬금없이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으니 댁께서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하신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겠습니까.
책사풍후
2023-08-04 16:13:56
신고
삭제
수정
답글
그건 영토가 아니라 세력권이나 문화권으로서의 뜻임.
책사풍후
2023-08-04 16:15:31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우산도는 서기 6세기 초반 이전에는 신라 땅이 아니었고, 우산도가 우산국이라는 100% 독립국의 영역이었는지, 혹은 왜국과 한 패거리였는지는 확실하지않음. 다만 일본 쪽 전승들에 우산도,무릉도 이 쪽 섬들을 '이소타케루' 섬들이라고 적고있어서 왜국이랑 한 패거리였겠구나하고 같은 색깔로 슥 칠한거고. 마한 가야가 왜국 세력권으로 칠해져있는건 서기 5세기 왜왕이 그렇게 주장했고 고고학적으로도 왜군의 장기간 주둔 흔적이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칠한 것임.
Randomuser
2023-08-04 16:39:27
신고
답글
서기 5세기 왜왕들이 영유권을 주장했다고 실제 세력권이라 이해해버리면 어떡하십니까? 6세기 백제 무령왕도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가야와 신라가 자기네 부용국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때 당시에는 한일 양측의 기록에서 신라와 가야가 엄연한 독립적 정치체로 나오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왜왕들의 영유권 주장도 당시 독립국이었던 '백제'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고학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왜계 문화와 잦은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것일 뿐, 왜군이 주둔했다는 흔적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책사풍후
2023-08-04 16:41:59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일단 더 확실히 하자면, 서기 5세기 전반 중반 후반에 걸쳐 왜왕들은 '영유권'을 주장한게 아니라 "백제 신라 임나가라 마한 진한' 지역의 여러 군사권을 총괄하는 대장군 관직을 자칭했고 이를 중국 남부 왕조에게 허가를 요구함. 물론 영유권 주장이나 군사권 주장이나 그게 그거 같겠지만 왜왕 찬,진,제,흥,무는 '군사권'을 주장했음. 이 부분부터 확실히 해둬야하고.
책사풍후
2023-08-04 16:43:50
신고
삭제
수정
답글
2번째로, 실제 고고학적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심지어 충청도 일대에서까지 왜국 계열 갑주들이 출토되고있고, 서기 5세기 전반대의 고흥 고분같은 경우는 왜국 출신 장수의 무덤임이 확실해졌음. 물론 이건 실제 영토 지배로서의 의미로 보면 절대로 안된다는건 당연한거고, 백제가 어떤 군사적 목적을 이유로 왜군을 불러와서 이 일대들을 백제 왕을 대신해 담당하는 지배자 혹은 관료로서 사용했음을 유추할 수 있음.
책사풍후
2023-08-04 16:45:44
신고
삭제
수정
답글
3번째, 서기 5세기 중반 혹은 중후반 무렵부터 전라도의 마한 족장들이 왜국식 무덤 '전방후원분'을 들여오고, 왜국 스타일 문물도 증가함. 이건 마한이 백제나 가야로부터의 압박으로부터 자신들의 생존을 지키기위해서 왜국과 밀접히 연계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음. 마치 나주 세력이 후백제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위해 마진국 왕건에게 붙은 거랑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음.
Randomuser
2023-08-04 16:59:13
신고
답글
고고학적 연구 결과는 어디까지나 가야와 왜국 양측이 군사적 동맹을 맺었으므로 왜군이 가야에 군사적 목적으로 주둔해 있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지, 왜국이 가야에 일방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했다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책사풍후
2023-08-04 17:05:28
신고
삭제
수정
답글
가야와 왜국이 대등한 군사적 동맹을 맺었는지. 혹은 처음엔 그런 관계였는데. 나중에 점점 왜국이 가야를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않음. 다만 5세기 왜국이 가야를 엄청나게 ~ 만만하게~ 본 것은 사실임.
책사풍후
2023-08-04 16:50:26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신라와 가야는 분명히 엄연한 독립적 정치체는 맞는데. 조선이나 대한제국도 엄연한 독립적 정치체였지만 청나라의 간섭을 받고, 일본의 간섭을 받았음. 청나라는 조선을 자기들의 속국이라 주장했고,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었음.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서기 12세기 고려시대 사료이고, 가야 본기는 존재하지가 않음.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내용이 수로왕 빼고는 엄청나게 적음.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신라나 가야 백제와 야마토와의 외교나 여러 관계들에 관련된 기록이 많음. 게다가 서기 6세기 초 '양직공도_백제국사재기'란 사료를 보면 가야 연맹과 신라는 백제의 부용국 즉 졸개들 나라로 적혀있음. 백제측의 과장이 양나라에게 들어갔다고 무시할수도있지만, 무령왕 때까지만 해도 신라,가야 연맹은 백제에 비해 열세였음을 유추해볼수있음. 물론 삼국사기에야 신라는 백제와 대등한 나제동맹을 했다고 나오지만 삼국사기는 서기 12세기 사료이고 당대에 적힌 사료가 아니기 때문에 걸러서 들어야한다고 보임.
Randomuser
2023-08-04 16:55:30
신고
답글
그래서 일본서기가 삼국사기보다 더 신뢰성이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시려는 겁니까? 혹시 신공황후 대의 삼한정벌 기사도 있는 그대로 신뢰하시는 건 아니겠죠? 만일 신라가 백제의 간섭을 받았다면 5세기 고구려의 간섭을 받던 신라가 충주 고구려비 등 금석문에서 고구려와 함께 등장하는 것처럼 금석문 상으로 백제의 직간접적 개입을 받는다는 정황이 나타나야 하는데, 정작 그런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백제가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신라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했던 6세기 초반의 신라 금석문에서는 백제 자체가 언급되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쪽이 그렇게 신뢰하시는 일본서기에서조차 백제가 신라를 지배한다는 서술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책사풍후
2023-08-04 16:59:57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충주 고구려비 당시의 신라는 고구려에게 보호받던 상황이었음. 그러나 보호에서 이탈하고 다시 백제의 손을 잡은 후로 신라가 백제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는 삼국사기를 통해서만 볼수있는데. 삼국사기는 서기 12세기 사료이므로 삼국사기의 말을 곧대로 들을수가없어보임.
Randomuser
2023-08-04 17:04:29
신고
답글
일본서기에서도 백제가 가야와 신라의 통교를 꾸짖거나 "신라가 감언으로 주위를 속인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신라는 예로부터 믿을 수 없는 무도한 나라였다" 같이 맹비난을 퍼붓는 등의 기록이 나타납니다. 백제가 신라를 이미 지배하고 있었다면 자신의 속령에 대해 그렇게까지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았겠죠.
책사풍후
2023-08-04 17:07:02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신라가 중국에 직접 사신을 보낸건 내물 마립간 때 딱 1번이고 그후로는 내가 알기론 서기 6세기 초까지는 백제 사신을 따라 함께 중국으로 간 것으로 암. 백제 무령왕측이 신라를 자기들의 부용국이라 주장하면, 신라 사신이 중국 황제한테 이를 따지고 항변했을 법도 한데. 그랬다는 말이 없는걸 보면 백제가 신라를 자기들의 속령으로 까지 만들지는 못했어도 신라가 굉장히 만만~했나 봄.
책사풍후
2023-08-04 17:07:53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일본서기에서 백제가 가야와 신라의 통교를 꾸짖거나, 신라가 감언으로 주위를 속인다 그러는건 무령왕 때 일이 아니고 서기 6세기 후반 성왕 당시의 일임.
책사풍후
2023-08-04 17:03:32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일본서기 신공황후기 첫 부분을 보면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했다고 나옴.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하니 고구려 백제가 모두 항복했다는건 당연히 판타지스러운 내용임. 막 졸본으로 이주한 도망자 신세인 부여 왕자 주몽이 비류국 왕 송양이랑 활쏘기 싸움에서 이기고 바로 비류국의 항복을 받았다는식의 그런 판타지 서술은 고대 왕조 국가들의.. 일종의..... 김일성 솔방울수류탄 던졌다는 얘기급의.... 그런 어떤 찬양적 서술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거까지 받아들이면 안되는거고. 문제는 신공황후란 사람이 실존인물인가 가상인물인가 혹은 실존인물들을 한데 뭉쳐서 만든 가상인물인가.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인가? 는 삼국사기의 석우로 사건이랑 교차해서 연구해보면 어느정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수있음.
Randomuser
2023-08-04 16:57:07
신고
답글
일본서기도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사서와도 명확히 모순되는 부분이 많이 존재하며, 백제가 일본 천황(참고로 당시 호칭은 천황도 아니었습니다)을 섬긴다는 등의 과장된 서술도 존재하기 때문에 삼국사기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보다 더 걸러서 들어야 하는 사료입니다.
책사풍후
2023-08-04 17:00:52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일본서기 역시 걸러서 들어야하는건 맞지만, 5세기 왜왕이 대놓고 백제 가야 신라 마한을 지 쫄따구 취급한거보면 굉장히 만만했나 봄. 그렇게 보면 일본서기의 과장된 서술들도 어쩌면 5세기 왜 왕권의 인식이 유교적 황제국 관점 서술의 형태로 반영된게 아닐런지?
책사풍후
2023-08-04 16:58:40
신고
삭제
수정
답글
그리고, 서기 4세기 말~5세기 초반 광개토의 침략으로 백제는 수도권 58개 성이 불바다가 되었고 징병대상자들은 대부분 신라로 달아나는등 나중엔 징병하기도 어려워짐. 이 난국을 백제 아신왕은 왜국에 태자 전지를 부동산 담보처럼 맡기고, 대신 싸움 잘하는 왜군을 데려와서 금관가야 지역을 주요 전진 기지로 해서 신라를 두드려패고, 서해 바다를 빙~ 돌아 고구려 수도권을 직격타 하는 등의 전략을 씀. 그리고 아신왕이 광개토에게 쳐맞아 나라가 불바다가 된 당시의 일본서기 기록을 보면 백제 피난민 궁궐군과 120현 인민들이 야마토로 귀화했다 라고 적혀있고 한반도 백제,가야에서 많은 피난민들(아야씨,하타씨)이 야마토로 왔다고 적혀있음. 이들은 '도래인'이고. 도래인들은 5세기 전반,중반,후반에 걸쳐 낙후된 미개국 야마토의 문명을 발전시킴. 아신왕 이전까지는 백제가 야마토보다 군사적 우위에 있었지만, 아신왕 때 광개토에게 쳐맞아 나라가 불바다가 된 후, 태자 전지를 야마토에 담보로 맡기고, 뒤따라 많은 백제인들 심지어 가야인들도 야마토로 귀화하면서 야마토 연맹(통일국가가 아니라 연맹)의 국력은 강해지기 시작함. 그리고 백제는 전라도의 마한 세력의 이탈을 막기위해 왜군을 고용했고, 가야 연맹은 고구려,신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위해 야마토와의 연대를 강화했을 것으로 보이고 이런 것들이 고고학적으로 흔적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야마토 왕들은 중국에 그런 일종의 '허세'를 부렸지만, 이상한건 백제 가야 신라 마한은 왜왕의 그런 '허세'에 대해서 아무런 항의를 했다는 기록이 어떤 기록에도 전혀 없음. 고구려의 지속적인 남침과 남조선의 정세 불안과 백제 가야 신라 마한 각 나라들의 내정적인 불안으로 인해서 왜국의 그런 허세질에도 그냥 입 꽉 닫고 산게 아닐까? 싶음. 이런걸 전체적으로 본 후 난 세력권을 그렇게 칠한 것임.
책사풍후
2023-08-04 16:20:33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일본서기에 금관가야가 왜군한테 괴롭힘당해서 금관가야가 빡쳐서 신라한테 항복하는게 적혀있는데. 이건 일본측의 과장이라 볼수는 있어도, 김유신 후손인 통일신라 진경대사 비문에도 임나(금관가야의 별명)가 '이웃나라 병사한'테 괴롭힘을 당해서 신라에 투항했다 라는 기록이 있음. 이 '이웃나라 병사'가 일본서기와 비교해보서보면 왜국일수도 있음. 이웃나라를 '백제'라고 볼수도 있기는 한데. 일본서기에서 왜국 장군 근강모야신이 금관가야를 괴롭히고있으므로 '이웃나라 병사'는 왜국이라고 보는게 맞을듯함. 이러면 당시 왜국이 어찌 그런 힘이 있냐 당시 왜국은 자기들 세력 통일 못했는데? 할수도있는데. 당시 왜국은 옛날 마한 진한 변한처럼 여러 나라가 뭉친 연합 혹은 연맹임. 여러가지 복잡한 한반도와의 교류나 용병으로서의 진출 뭐 그런 복잡한 것들이 섞이고 섞이다보니 "이웃나라 병사한테 괴롭힘 당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을수도있음. 하여튼 이 문제는 복잡한 것이므로 댓글에서 더 말하기도 귀찮음. 하여튼 트집 그만 잡으세요.
Randomuser
2023-08-04 16:43:00
신고
답글
댁께서 말씀하신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가야를 도와주겠답시고 신라와의 국경 지역에 백제군을 주둔시키겠다느니, 왜신관들을 전부 내보내야 한다느니 등의 수작을 부려 결국 협상이 결렬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백제가 가야의 일부 지역들을 점령했다는 기록도 있고 말이죠. 이를 고려하면 진경대사비문의 '이웃나라'는 백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사료됩니다.
책사풍후
2023-08-04 17:04:41
신고
삭제
수정
답글
백제라고 하면 백제라는 말을 적는게 마땅해보임. 왜냐 김유신은 백제 멸망시킨 사람이니까 당당히 그런 말을 적는게 오히려 더 나아보임. 근데 아마도 그 '이웃나라 병사'가 왜국이었으니 그게 쪽팔려서 안 적은게 아닐런지?
책사풍후
2023-08-04 16:03:58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유사역사학 아닌지 오래 되었습니다만. 뭐 제가 유사역사학을 여전히 주장하는게 있다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Randomuser
2023-08-04 16:07:23
신고
답글
1년 전에 본인이 개설한 채널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신 적이 있음이 확인됩니다. 임나일본부설이 유사역사학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한일 양국의 주류 학계에서 검증된 바이니 그쪽도 익히 아실테고, 인터넷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신 분에게 1년 전은 그다지 '오래 전'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책사풍후
2023-08-04 16:09:55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하는게 아니고 조선시대 청장관전서 기록에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 기록을 선비가 그대로 긁어 붙인 기록이 있다는데. 그걸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한다고하네. 내가 옛날에 쓴 글이라서 다시 상세히 봐야겠는데. 별걸 트집을 잡네.
책사풍후
2023-08-04 16:10:31
신고
삭제
수정
답글
한일 주류 학계가 말한건 임나일본부가 식민지는 아니다라는 것에 서로 공감대를 형성한거지. '임나일본부'라는 외교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데. 확실히 알고 다시 공부하세요.
책사풍후
2023-08-04 16:11:02
신고
삭제
수정
답글
환단고기나 환뽕 사상에서 멀어지기 시작한건 2010년~2013년이니 오래전이지요. 10년이 오래전이 아니면 뭐가 오래전이지? 그리고 시간이 남아도네. ㅉㅉ
라그나뢰크
2023-08-04 15:56:40
신고
답글
*수정됨 얘 책사풍후는 환빠+국뽕+일뽕+중뽕+개독+스노브+음모론으로 유사역사학 도배글 써놓아서 역덕계에서 엄청 유명한 빌런임. 한때 꺼라위키나 리그베다에서도 단독항목으로 존재했을정도로 연륜있는 역덕들한테도 악명으로 유명함. 혹시 부연 그런거 더 설명 필요하면 관리챈에 조만간 차단 사유 디테일하게 더 남겨놓겠음.
책사풍후
2023-08-04 16:02:41
신고
삭제
수정
답글
환뽕 아닌지 오래 되었습니다만.
책사풍후
2023-08-04 16:03:01
신고
삭제
수정
답글
사람 사상이 세월이 지나면 바뀌기 마련인데. 왜 프레임 씌우기인지.
책사풍후
2023-08-04 16:13:26
신고
삭제
수정
답글
그리고 통일신라 고려 조선 궁궐 관모 관복이 그대로 중국 복식 고대로 가져왔다는걸 주장한다고 중뽕? ㅉㅉ
